 Gustav Mahler(1960~1911) 왜 구스타프 말러인가? 구스타프 말러의 작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콘서트홀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말러는 루드비히 반 베토벤 처럼 지휘자들이 꼭 한번쯤은 거쳐 가야 할 작곡가가 되었고 많은 지휘자들이 말러의 작품을 자신의 주요 레퍼토리로 삼고 있다. 하지만 클래식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말러의 음악은 매우 길며 난해하고 대편성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작품이기에 절대 대중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말러의 음악을 즐기는 말러리안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말러의 작품은 생전에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복잡하다는 악평을 받으며 거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초연들은 대부분이 실패로 끝났고 작곡가 자신도 실연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작품도 다수 존재한다. 말러의 작품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제자이자 친구이기도 했던 지휘자 브루노 발터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연주되기도 했으나, 말러의 작품을 반세기 가까운 잠에서 일어나게 한 지휘자는 바로 레너드 번스타인이다.
번스타인은 매우 난해하고 대편성인 말러의 작품을 자신의 주요 레퍼토리로 삼았고 뛰어난 해석으로 말러의 작품을 부활시켰다. 번스타인이 말러의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이유는 번스타인 그 역시 뛰어난 작곡가였기 때문에 작곡가의 눈으로서 곡을 꿰뚫어보고 해석하였다는 측면도 강하지만, 번스타인 역시 말러와 동일하게 유태인이었으며 말러와 비슷한 심리를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다. 오스트리아 안에서는 보헤미아인으로, 독일인 중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세계 안에서는 유태인으로서. 어디에서도 이방인이고 환영받지 못한다.” -구스타프 말러
말러는 평생을 이방인이라는 시선으로 살아왔고 이러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빈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이라는 성공을 이루었으나, 진보적이고 난해한 작품세계로 하여금 수많은 반대세력과 싸워왔다. 번스타인 역시 유럽에서는 미국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편견어린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리고 그의 해석이 지나치게 현대적이기도 하고 파격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반대세력을 몰고 다니던 인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말러에게 번스타인은 동질감을 느꼈고 말러의 작품세계에 강한 애착을 가져 뛰어난 해석을 할 수 있었으며 많은 말러리안들에게 번스타인의 말러는 번스타인의 말러가 아닌 말러의 말러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번스타인의 노력으로 말러가 부활한 것이며, 번스타인의 말러를 들으면 어려운 말러가 쉬워지느냐? 결코 아니다.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말러를 들여다보려면 번스타인처럼 말러의 일생과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교향곡은 내 삶의 모든 것을 표현한다. 나의 교향곡에는 나의 경험, 나이 고통, 나이 존재 나의 모든 인생관이 들어있다 나의 불안, 나의 공포…" - 구스타프 말러
말러의 생애는 결코 순탄한 인생이 아니었으며 말러의 이러한 심리는 그의 작품세계에 그대로 나타난다. 말러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학대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학대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을 한결같이 사랑했으며 집안을 유지하는 기둥이었으며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은 순교자적인 이미지로 인식되었고 말러의 정신세계에 크게 자리잡았다. 또한 어린 시절 많은 동생들을 잃은 경험은 말러로 하여금 어린 나이부터 죽음의 공포에 대하여 고민하게 하였다.
말러는 이방인이라는 편견과 냉대 속에서 얻은 빈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이라는 절대 권력을 반대파의 음모로 잃게 되고, 심장병을 앓았으며 어린 딸을 병으로 잃었다. 힘들게 결혼에 성공한 아내 알마 말러와의 결혼생활은(알마 말러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애인이었으며 19살 연하였고 음악적으로 뛰어났으며, 말러의 뮤즈였다)말러의 출신 때문에 편견 속에 이루어졌다.
이처럼 간추려 본 말러의 인생에서도 나타나듯이 말러의 인생은 매우 굴곡이 심했으며 비극적이었다. 하지만 단순이 인생이 비극적이었다고 해서 이러한 인생의 굴곡과 고뇌가 작품에서 나타난다고 해서 말러에 대하여 진정으로 공감하고 말러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비극적인 인생을 살아왔으며 말러보다도 더욱 비극적인 인생을 살아온 예술가들 역시 매우 많기 때문이다. 말러의 작품세계를 진정으로 공감하려면 그의 내면의 심리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말러의 작품은 ‘우리’가 아닌 ‘나’이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인류가 고난을 극복해서 빛으로, 평화로 나아가는 것을 표현했다면 말러는 지극히 내면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말러는 세기말에 살아왔으며 말러가 살던 시대는 급격한 변화와 동양문명 등 새로운 문명의 유입 그리고 기술의 발달로 극심한 변화를 겪던 시대였다. 농경중심의 공동체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했고 개인주의와 허무주의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왔던 말러는 심한 고독감을 느꼈으며 이러한 고뇌와 함께 그의 비극적인 삶을 작품에 투영했다. 말러는 끊임없이 신의 존재를 찾았으며 자신을 이러한 고통과 불안 속에서 구원해줄 존재를 계속해서 찾았고 어둠속에서 빛을 갈망했다.
개인의 고독과 불안함 그리고 우울함, 그 속에서도 행복을 찾으려 하고 빛과 어둠이 쉴 새 없이 교차하는 심리. 지금은 어둠에 머물러 있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끌어올려 줄 수 있는 빛의 세계를 찾으며 자기 자신의 구원을 갈망하는 말러의 작품세계는 파편처럼 흩어져 점차 ‘우리’보다 ‘나’가 앞서며 지독한 개인과 개인의 경쟁을 유도하는 현대에서, 기술은 고도로 문명화 되었지만, 정서는 기댈 곳 없이 끊임없이 방랑하는 정서적 유목민의 모습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었다. 언제나 고민하고 갈등하지만 빛을 동경하며 행복과 어둠을 번갈아가는 말러의 모습은 이제 서야 사람들과 진정으로 호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말러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다고 하였다. 말러는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시대가 도래 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홀로 남았다는 기분을 느끼며 내면적인 고통과 불안 그리고 한없는 고독감을 느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여 자신의 작품이 미래의 사람들과 더욱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Mahler Symphony No.6 A minor 'Tragic'
비극적이라는 제목은 말러 자신이 직접 붙인 것이고, 이 곡은 말러의 내면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으며 지극히 자기 주관적인 시각에서 작곡된 곡이다. 하지만 제목과는 달리 말러가 6번 교향곡을 작곡하던 시기는 그의 인생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아내 알마 말러 역시 행복한 시기를 살아가던 그가 비극적인 음악을 작곡하는 모습을 보고 이러한 말러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말러의 비극적이라는 제목은 그의 현실과는 상관없이 그의 일생 전체를 통틀어 고뇌하던 삶에 대한 시선과 고통을 투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6번 교향곡이 말러의 작품 통틀어 독특한 성격을 가진 것은 많은 말러의 작품이 어둠에서 빛으로 라는 결론을 가졌으나,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둠을 간직했고 비극적으로 종결된다. 유일하게 빛의 테마를 가진 부분이 있는데 1악장의 제 2 주제가 그 부분이며 이러한 부분은 바로 아내 알마 말러를 표현한 것이다. 비극적이며 어둠속에서 유일하게 말러가 바라본 인생의 빛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였던 것이며, 이러한 테마는 작품 내내 거침없이 몰아치는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추천 음반
레너드 번스타인/뉴욕필(SONY,1967)★★★★★ 역시 번스타인의 말러는 매우 뛰어나다. 폭풍처럼 밀어붙여가는 빈필과의 연주(DG)도 매우 뛰어나나, 전체적인 완성도와 드라마틱한 측면으로 보았을때 뉴욕필과의 연주를 더욱 높게 평가해주고 싶다. 번스타인은 뉴욕필을 통해 매우 극적이며 뛰어난 해석과 정교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매우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베를린필(DG,1977)★★★★★
카라얀의 말러 6번은 그의 다른 연주들이 그렇듯 매우 섬세하고 정교한 앙상블을 보여준다. 이러한 정교하고 섬세한 해석은 한층 말러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카라얀은 이 연주에서 비극적인 테마와 아름다운 테마를 확실히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카라얀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해석은 이러한 해석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기존의 해석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겐 좋지 않을 것이다.
Leonard Bernstein, Wiener Philharmoniker / Mahler Symphony No.6 Tragic |